創 : 시작할 창, 業 : 일 업, 守 : 지킬 수, 成 : 이룰 성
풀이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유래
수(隋)나라 말기, 정국이 혼란해진 틈을 타서 아버지 이연(李衍)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한 야심가 이세민(李世民)은 서기 617년 2세 황제인 양제(煬帝)가 암살되고 그 양제의 손자인 공제(恭帝)가 3세 황제로 뒤를 잇자, 이듬해인 618년 마침내 공제를 폐하고 당(唐)나라를 세웠다.
아버지를 고조(高祖)로 옹립했다가 그 고조가 죽은 626년에 2세 황제 태종(太宗)으로 대를 이은 이세민은 영민한 군주였다. 천하통일을 이룬 데 이어 변방을 정복하여 영토를 넓히고, 국내적으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함과 동시에 인재를 많이 등용하여 학문과 문화를 장려했다. 그러면서도 사치를 금하여 건전한 기풍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도록 했다. 당나라 태종 연간의 이러한 태평성세를 일컬어 중국에서는 그 연호를 따서 ‘정관의 치[貞觀之治(정관지치)]’라고 한다. 태종이 그처럼 정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위징(魏徵) 등 뛰어난 참모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신임하는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다.
“경들은 ‘창업’과 ‘수성’ 어느 쪽이 어렵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우복야(右僕射)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일어나는 뭇 영웅들을 제압해야 가능한 일이므로, 역시 창업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부(大夫) 위징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옛날의 사실(史實)을 돌이켜 보건대 임금 자리는 갖은 고난 속에서 어렵게 얻었다가도 안일함 속에서 쉽사리 잃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수성이 어렵습니다.”
두 의견을 듣고 난 태종이 말했다.
“창업과 수성 어느 것이 더 어렵고 덜 어렵겠소. 짐은 둘다 똑같다고 생각하오. 허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지나갔으니, 앞으로 공들과 함께 수성에 힘쓸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