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 앞 전, 倨 : 오만할 거, 後 : 뒤 후, 恭 : 공손할 공
풀이
전에는 거만하더니 나중에 공손해졌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신분 변화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인심을 꼬집는 말이다.
유래
소진(蘇秦)이라 하면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縱橫家)이며, 합종책(合縱策)을 역설하여 진(秦)나라를 제외한 6국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그 6국의 재상을 겸직했던 대단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만 해도 그의 처지는 한심할 정도로 불우했다. 수수께끼의 종횡가 귀곡선생(鬼谷先生)한테서 학문을 배운 그는 여러 해 동안 이 나라 저 제후를 찾아다니며 경세(經世)의 지식을 펼쳐 보였지만 누구 하나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는 비참한 몰골이 되어 고향인 낙양(洛陽)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그를 싸늘하게 대했다. 공부하여 출세하겠다고 떠나더니 겨우 이런 꼴로 돌아왔느냐 하는 태도였다. 특히 그의 형수는 노골적으로 비웃고 박대했다.
‘모두가 내 못난 탓이렷다.’
소진은 이렇게 생각하며 툴툴 털어버리고는 공부에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형수를 비롯한 가족들의 냉대 속에서도 그의 학문은 나날이 성취가 높아져 갔고, 마침내 ‘합종의 이론’을 완성하여 다시 세상에 나아가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이 되었다.
소진이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조(趙)나라였는데, 합종책을 들어본 조왕은 홀딱 반하여 그를 재상에 앉히고 무안군(武安君)에 봉했다.
“우리 조나라뿐 아니라 6국 모두가 살 길은 그 방법뿐이오. 그러니 이제부터 각 제후들을 한 사람씩 만나 합종을 성사시켜 주면 고맙겠소.”
조왕은 이렇게 부탁하며 막대한 예물을 챙겨 주었다. 첫 번째 목적지로 초나라를 선택해 편력에 나선 소진은 각국의 제후들을 만나 합종책을 적극 설명하고 찬성을 얻어 냄으로써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진의 행렬이 낙양을 지나가게 되었다.
“예까지 왔으면서 가족들을 안 만나볼 수야 없지.”
이렇게 생각한 소진은 자기의 옛집으로 행렬을 향하게 했다. 여느 임금의 행차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 마차와 깃발과 기치창검을 든 호위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나타난 소진을 본 가족들은 상대가 하늘같은 신분이므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채 머리를 깊이 숙이고 절하며 물러가는 식이었다. 특히 지난날 가장 박대하던 형수의 태도는 다른 식구 누구보다도 공손하고 극진했으므로, 소진은 웃으며 물었다.
“옛날에는 이 시동생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시더니, 이젠 웬일이십니까?”
그러자 형수가 대답했다.
“그야 이젠 서방님의 지체가 지체이니만치 당연하지요.”
이 말을 들은 소진은 한숨을 쉬며 혼자 뇌었다.
“이 몸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나인데, ‘부귀할 때는 이처럼 남들의 두려움을 사고 미천할 때는 멸시를 받는구나!’ 부와 명예란 이다지도 대단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