煮 : 삶을 자, 豆 : 콩 두, 燃 : 탈 연, 萁 : 콩깍지 기
풀이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뜻으로, 형제간의 아귀다툼을 한탄하는 말이다.
유래
삼국 시대의 영웅 조조(曹操)에게는 아들이 여럿이었지만, 그는 자기 뒤를 이을 자식으로 첫째 비(丕)와 셋째 식(植)을 꼽고 있었다. 조비는 성격이 활달하고 무에 능하여 아버지를 따라 전장을 누빈 반면, 조식은 천부적 자질의 시인이었다. 난세에 절대 필요한 무를 갖춘 데다 장남인 탓으로 조비가 객관적 관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조는 오히려 자기의 문학적 자질을 빼어 닮은 셋째를 더 사랑했다.
그런 까닭으로 조비의 마음 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우 조식에 대한 경계심과 미움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눈치를 못 챌 리가 없는 조식은 조식대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윽고 조조가 죽은 후 그 자리는 조비에게 돌아감으로써 계승권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렇다고 조비의 가슴 속 앙금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우가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을 다 썼다. 한번은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조식에게 이런 엄포를 놓았다.
“과인의 앞에서 일곱 걸음을 걷되, 그동안에 시를 한 편 지어 읊도록 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 중한 벌을 내릴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심술이 아니라 천하제일의 문재(文才)라고 칭찬이 자자한 아우에게 일침을 가하여 창피를 주려는 술책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조식은 일곱 걸음을 걸은 후 목청을 가다듬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것이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콩 삶는 데 콩깍지를 때니’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콩은 솥 안에서 우는구나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분래 같은 뿌리에서 났거늘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서로 지짐이 어찌 이리 급하뇨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가 같은 부모형제 사이에도 싸우는 인간의 동물성을 잘 표현한 시이다. 듣고 있던 조비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감상으로 조비의 비정함은 그 후로도 변함이 없었고, 조식은 계속 불우한 처지에 있다가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