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 한 일, 敗 : 질 패, 塗 : 칠할 도, 地 : 땅 지
풀이
한번 패배로 간뇌(肝腦)를 땅에 칠한다. 다시 말해서 회복 불능의 패배를 당한 것을 뜻한다.
유래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무명 시절 이야기다. 그가 사수(泗水)의 형장(亨長)이라는 보잘것 없는 벼슬을 살고 있을 때인데, 그 무렵은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2세 황제 호해(胡亥)가 제위를 이어받은 때로서, 시황제의 황릉 조성에 온 국력을 기울이다시피하는 형편이었다. 이 대규모 공사에는 많은 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따라서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이때 유방은 자기네 지방에서 징집된 농민들을 공사 현장까지 인솔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먼 길을 가는 도중에 도망자가 생겨 골치를 앓았다.
‘하긴 저들을 꾸짖을 일도 아니지.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건 그렇고, 나 역시 마찬가지 처지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유방은 전원을 가까이 불러 모으고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명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을 데리고 가오마는, 기한 안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지 어떨지 사실은 걱정이오. 만일 날짜를 어기게 되면 여러분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또 설령 제때 도착한다 하더라도 그 막심한 고생을 어찌 견딜 것이며, 살아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소. 그러니 여러분은 여기서 각자 흩어져 고향으로든 어디로든 가고 싶은 데로 가시오. 나 역시 그럴 것이오.”
농민들은 유방의 말에 감격해 대부분은 유방을 따르겠다고 남았다. 졸지에 우두머리가 된 유방은 그들을 데리고 망산(芒山)에 들어가 산적이 되었다. 기원전 209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봉기를 신호탄으로 해서 오랜 폭정과 착취와 노역에 시달려 온 백성들의 분노가 마침내 전면 내란으로 폭발할 조짐이 나타나자, 유방의 고향인 패현(沛縣) 현령은 보신책으로 자기도 진승에게 붙을까 어쩔까 망설였다. 그것을 본 패현의 관리인 소하(蕭何)와 조삼(趙參)이 현령에게 말했다.
“유방이 제법 상당한 군세로써 망산에 웅거하고 있다 합니다. 일단 그를 불러들여 돕도록 함으로써 당장의 근심을 던 다음 마지막 거취를 생각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럴듯한 방법이므로, 현령은 즉시 사면 조치와 함께 초청하는 편지를 써서 심부름꾼에게 주고 망산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래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방이 엉뚱한 마음을 먹는 경우 오히려 늑대를 집안에 불러들이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와 같은 의혹은 며칠 후 유방의 농민군이 성 아래 도착했을 때 굳어졌다. 무수한 깃발과 기세등등한 농민군을 보자 더럭 겁이 난 현령은 즉시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 접근을 막는 한편, 소하와 조참을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소하와 조참은 용케 위기를 벗어나 유방한테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이놈이 이럴 수가!”
배신을 당한 유방의 분노는 컸다. 그래서 성 안 병사들과 백성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여러 통 써서 화살에 매어 쏘아 날렸다. 현임 현령이 간사하고 욕심이 많아 그동안 백성들의 고초가 컸음을 어느 누가 모르랴. 지금 전국에서 진나라 타도를 외치는 반란이 속발하고 있는바, 자칫하면 그 불길에 우리 현의 백성들이 어떤 화를 입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에 나 유방은 백성들을 살리고자 현령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병사들을 이끌고 왔으나, 현령은 배신하고 말았다. 성 안 백성들이여, 병사들이여! 한시바삐 봉기하여 무도한 현령을 타도하고 그대들의 부모형제요 친구며 이웃인 농민군을 맞이할지어다. 시간을 끌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늦으리라.
이 격문을 본 성 안 백성들과 병사들은 즉시 관아로 달려가 현령을 죽이는 한편 성문을 활짝 열어 유방을 새 현령으로 추대했다. 유방은 일단 그 요청을 사양했다.
“천하 정세가 유동적이므로, 지도자는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하오. 만일 인선을 잘못하는 경우에는 ‘한번 패배로 간(肝)과 뇌(腦)를 땅바닥에다 바르는[一敗塗地(일패도지)]’ 꼴을 당하기 십상인 것이오. 그러니 이 사람보다 더 유능하고 덕망을 갖춘 분을 찾도록 합시다.”
그러나 주위에서 이구동성으로 그를 강력히 추대했기 때문에 유방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고, 한왕조 건설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