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 한 일, 網 : 그물 망, 打 : 칠 타, 盡 : 다할 진
풀이
그물질 한번으로 물고기를 다 잡는다. 즉, 범인이나 어떤 무리를 단번에 몰아 잡는다는 말이다.
유래
송(宋)나라 4대 황제 인종(仁宗)은 인자한 임금이었다. 사나운 오랑캐 거란[契丹(계단)]이 세력을 점점 확대하는 바람에 북방이 불안해지고 남방의 영토이던 안남(安南)이 독립해 떨어져 나가는 등 주변 정세에 먹구름이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 장려와 폭넓은 인재 등용으로 문치(文治)를 펴는 등 태평성대를 이룩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중국 역사에서도 이름이 뚜렷한 명신들이 많았다. 사마광(司馬光), 구양수(歐陽修), 장재(張載), 정호(程顥), 두연(杜衍) 등이 그들이다. 그처럼 각자 개성과 자존심이 대단한 기라성 같은 준재들이 모이고 보니 정책 논의가 활발해지는 반면에 의견 충돌도 잦았고, 조신들의 파당화(派黨化)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권력 교체가 너무나 빈번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한번은 청렴강직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한 두연에게 재상 차례가 왔다. 그 당시 조정이 어떤 정책 결정을 내릴 때는 아무리 황제라 해도 독단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반드시 주요 대신들과 공식적인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내강(內降)이라 하여 황제가 중신들과 협의 없이도 단독으로 결정하는 관행이 생겼다.
‘정치의 도(道)를 올바로 확립하려면 이런 관행부터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한 두연은 황제의 내강이 있어도 뜯어 보지도 않다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이면 도로 황제에게 올려 보내곤 했다. 워낙 올곧은 그의 성질을 알기 때문에 황제도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호재다 생각한 반대파에서는 천자의 성지(聖旨)를 훼손하는 짓이라 하여 벌떼같이 들고일어났다. 그렇지만 두연은 자기에 대한 비난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때 마침 공교롭게도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의 공금 횡령 사건이 불거졌다. 반대파에서는 ‘이거 잘 됐다’ 하고 쾌재를 불렀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왕공진(王拱辰)이었다. 어사(御使)로서 수사권을 쥐고 있는 그는 소순흠을 잡아다 혹독하게 문초하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죄가 있건 없건 무조건 모조리 잡아다 투옥했다. 그런 다음 태연히 두연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범인들을 ‘일망타진’했습니다.”
결국 두연도 이 사건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재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