遠 : 멀 원, 交 : 사귈 교, 近 : 가까울 근, 攻 : 칠 공
풀이
먼 나라와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수법을 말한다.
유래
범수(范睡)는 전국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종횡가(縱橫家)의 한 사람이다. 그가 한번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요청에 따라 회견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무렵 소양왕은 제(薺)나라를 치는 문제를 놓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소양왕이 범수를 만나려고 하는 것도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약속된 날 집을 나선 범수는 대궐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저쪽에서 바로 그 소양왕의 마차 행렬이 오고 있었다.
‘아니, 사람을 불러 놓고서는.’
기분이 상한 범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냥 똑바로 걸어갔다. 지엄한 군주의 행렬을 막겠다는 듯이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는 범수를 발견한 관원들은 깜짝 놀랐다.
“웬 놈이냐? 대왕의 행차시다. 썩 비키지 못할까!”
관원들이 당황하여 이렇게 소리쳤으나, 범수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거 무슨 소리냐. 진나라에 태후(太后)와 양후(穰侯)는 있을지 몰라도 어디 대왕이 있다는 게야.”
그 소리를 듣고서야 소양왕은 상대가 누구인 줄 알아차리고 수레를 멈춘 다음 내려와서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부디 이 사람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군왕으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인 태도이건만 범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소양왕이 다시 한번 부탁했어도 마찬가지 묵묵부답이었다. 수행 관원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가운데 소양왕은 더욱 공손한 태도로 부탁했다.
“선생께서는 이 사람을 가르칠 만하다고 생각을 아니 하시는지요. 그렇더라도 제발 소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범수는 다음의 비유를 들어 말했다.
“옛날 강태공이 문왕(文王)한테 의견을 말하자 문왕은 그것을 받아들여 상(商)나라를 멸하고 그 아들로 하여금 천하를 얻게 했습니다. 그런 반면에 비간(比干)은 주(紂)임금한테 의견을 말했다가 받아들여지긴커녕 도리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난 것입니까? 한 군주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다른 군주는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하와 저 사이에는 아직 깊은 정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가 전하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것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비간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세 번이나 물으셔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려마시고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소양왕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므로, 범수도 안심하고 대궐에 따라 들어가서 소양왕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문제에 대하여 명쾌한 논리를 펼쳐 보였다.
“아시다시피 이 진나라와 제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어 군사 작전을 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적은 군대를 보내면 패하기 십상이라 다른 제후들의 웃음을 살 것이고, 많은 군대를 보내면 국내 문제가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는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이 순순히 길을 빌려 줄지도 의문이거니와, 설령 통과하여 제나라를 쳐서 이긴다 하더라도 영토에 편입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옛날 위나라가 조나라를 통과해 중산(中山)을 정벌했지만, 정작 그 땅을 손아귀에 넣은 것은 조나라였지 않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위나라는 중산에서 멀고 조나라가 가깝기 때문에 남 좋은 일만 시켜 주고 만 셈이지요. 그러니 전하께서는 우선 제나라, 초(楚)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어 놓고 가까운 한나라와 위나라부터 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키우면 그 다음에는 제나라, 촉나라가 무슨 수로 당하겠습니까? 이것을 일컬어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이라 합니다.”
“과연 속이 다 시원해지는 묘책입니다.”
소양왕은 몹시 기뻐하며 범수를 대신으로 발탁한 다음 재상으로 벼슬을 높이고 응후(應侯)로 봉했다. 그리고 이 ‘원교근공책’은 나중에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본 이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