遇 : 만날 우, 事 : 일 사, 生 : 날 생, 風 : 바람 풍
풀이
일 또는 바람을 만난다는 뜻으로, 본래는 젊은 기백과 정의감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차츰 변질되어 시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유래
한(漢)나라 때 유주(幽州) 탁군(涿郡) 출신인 조광한(趙廣漢)이란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보잘것 없는 미관말직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했으나, 청렴결백한 성품과 근면성실한 일처리로 윗사람의 인정을 받아 차츰 승진하게 되었다. 그 조광한이 지금의 경조윤(京兆尹)으로 있을 때 일이다.
마침 8대 황제인 소제(昭帝)가 세상을 떠나 서울에서 가까운 풍현(豊縣)에 묻혔는데, 두건(杜建)이란 자가 황릉의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건이 자기 직위와 후원 세력을 믿고 방자하기 이를 데 없이 굴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광한은 직속 상관으로서 두건을 불러 엄중한 경고를 했다.
“관용은 이번 한번으로 족하다. 다시금 비리 사실이 내 귀에 들어올 시에는 살아남지 못할 줄 알라.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두건은 속으로 코웃음쳤다. 자기 뒤에는 경조윤 정도로는 비교도 안 되는 고관대작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비위를 저지르자, 조광한은 두건을 가차없이 잡아다 가두었다. 이 사실을 안 서울의 세도가들이 두건을 석방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조광한은 한술 더 떠서 두건을 참형에 처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단호한 조치에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조광한이 자기 직위의 권한으로 국법에 의해 조치한 일인데다 계속 떠들어 봐야 ‘사후약방문’ 격에 지나지 않으므로 두건의 후원자들도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하여 조광한의 이름은 더욱 높아졌고,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런 조광한에 대해 『한서(漢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을 보면 바람이 일어' 회피하는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