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 : 나 오, 事 : 일 사, 畢 : 마칠 필, 矣 : 어조사 의
풀이
내가 할 일은 끝났다는 뜻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때 사용한다.
유래
송(宋)나라 말기에 문천상(文天祥)이라는 충신이 있었다. 여러 주요 관직을 거친 끝에 세도가인 가사도(賈似道)와 충돌하는 바람에 벼슬을 팽개쳐 버리고 고향 문산(文山)에 내려가 조용히 은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공종(恭宗) 때인 1275년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의 군대가 양자강을 넘어 남침하는 바람에 파란의 운명에 휩쓸리게 되었다.
조정의 부름을 받은 그는 평강(平江)에서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군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이듬해 백안(伯顔) 장군이 지휘하는 원나라군이 대공세를 펴는 바람에 조정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문천상은 다급해진 황제로부터 화의를 주선하여 적의 공세를 멈추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백안을 만나러 적진에 들어갔으나, 화의는커녕 붙들려 억류되고 말았다.
문천상이 적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에 조정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음을 알고 항복 문서를 원나라에 전달했는데, 한쪽에서는 단종(端宗)이 멋대로 대통 계승을 부르짖으며 국가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판국이었다. 이때 문천상은 북쪽으로 압송되다가 기회를 보아 탈출하여 단종의 부흥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단종의 세력 또한 원나라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참패함으로써 남송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고, 다시 포로가 된 문천상은 북경(北京)으로 압송되어 옥에 갇혔다.
문천상의 진면목은 이때부터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완전히 손에 넣은 원나라는 문화적으로 우월한 한족을 다독거려 자기네 세력 속에 동화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 계급에 속해 있던 명망가들을 포섭해 동조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고, 따라서 저항 운동의 중심 인물인 문천상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나라는 갖은 조건을 제시하며 문천상을 회유하려고 했으며, 재상 지위까지 제의했다. 그러나 문천상은 그런 파격적인 조건에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나는 송나라 신하다. 어찌 야만(野蠻)한 너희에게 머리를 숙이랴.”
원나라는 무려 삼 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문천상을 회유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자, 마침내 그를 처형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드디어 사형이 집행될 때, 문천상은 형리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일은 이제 끝났다[吾事畢矣(오사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