眼 : 눈 안, 中 : 가운데 중, 之 : 의 지, 釘 : 못 정
풀이
눈 속의 못이라는 뜻이니, 미워서 보기 싫은 상대를 비유한다.
유래
나라가 망할 무렵이 되면 여러 가지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는 법이지만, 그중의 하나가 탐관오리에 의한 부정부패다. 정치의 기강이 흔들리는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다.
당(唐)나라가 끝나갈 무렵의 사람인 조재례(趙在禮)가 곧 그런 부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북절도사(河北節度使)인 유인공(劉仁恭) 밑에서 일했으나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뇌물 공세를 펴서 출세하기 시작해서 승승장구했고,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왕조 때도 높은 벼슬을 역임하는 등 세상 물결을 잘 타고 넘는 변신의 천재였다.
그는 주로 지방관으로 돌았는데, 주위에 눈이 많은 중앙의 관직보다는 아무도 꺼릴 것이 없는 지방에서 벼슬을 해야 백성들을 착취해 재물을 모으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무튼 탁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송주(宋州)에서 백성들의 재물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후 조정의 명에 의하여 영흥(永興) 절도사로 자리를 옮겨 가게 되자, 송주 백성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이제야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되었네. 마치 ‘눈에 박힌 못’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지 뭐야.”
이 말이 조재례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니, 뭐라고? 나더러 눈에 박힌 못이라고? 이놈들, 어디 그렇다면 좀 더 고통을 당해 보라지.”
화가 난 조재례는 추진하던 과제도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송주에서 1년만 더 있게 해 달라고 조정에 상신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조정에서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유임시켰다. 기세등등해진 조재례는 즉시 ‘못 빼는 돈[拔釘錢(발정전)]’이란 특별 세금을 부과해 백성들을 경악하게 했다. 만일 정해 준 기간 안에 납부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투옥하거나 매질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 악랄한 수법으로 1년간에 1백만 꿰미도 더 되는 돈을 챙기고 나서야 유유히 다음 임지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