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 편안할 안, 堵 : 담 도
풀이
편안한 담, 다시 말해 담 안에 있으면 걱정 없다는 뜻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유래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재상 악의(樂毅)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나아가 제(齊)나라를 공략하라고 명했다. 이로부터 장장 5년 동안 악의는 제나라의 성 70여 개를 함락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 견디지 못한 제나라 민왕(湣王)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처럼 제나라 거의 전역이 연나라군의 발밑에 짓밟혔지만, 유독 즉묵성(卽墨城)과 거성(筥城)만은 완강하게 버티면서 함락되지 않았다.
“도망친 민왕이 거성에 있다.”
이런 정보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런 정보가 없더라도 악의로서는 적의 마지막 보루인 두 성을 점령함으로써 출정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려 했다. 그래서 성을 에워싸고 필사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상대편도 필사적인 방어를 폈기 때문에 싸움은 무익한 소모전으로 질질 끌 뿐이었다.
소문대로 민왕은 거성에 있었으나, 그는 난국을 돌파할 용기도 능력도 없는 군주였다. 그래서 구원군을 이끌고 와 있던 초(楚)나라 탁치(倬齒) 장군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민왕을 죽여 버린 다음, 성을 지켜 냈다.
거성 공략을 일단 보류한 악의는 동쪽의 즉묵성을 포위하고 전력을 쏟아 부었다. 그리하여 즉묵성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졌을 때, 그 난국을 지혜로써 수습한 사람이 전단(田單)이다.
전단이 유능한 재능의 소유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뜻밖의 상황 변화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 무렵 공교롭게도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惠王)이 대를 이었는데, 혜왕은 그전부터 악의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전단은 첩자를 연나라에 침투시켜 전선의 상황을 왜곡하는 거짓 정보로 혜왕과 악의를 이간하여 서로 손발이 맞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한편 몸소 삽을 들고 병사들 사이에서 땀을 흘리고, 자기 집 부녀자들까지 군무에 동원했으며, 밥 한 주먹이라도 병사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런 식으로 꾸준히 군사력을 여축한 전단은 드디어 싸울 만하다고 판단되자 한판 승부를 준비했다. 무장한 병사들은 숨겨 놓고 노약자와 부녀자들을 성벽 위에 위장으로 늘여 세운 다음, 사자를 연나라 군영에 보내어 항복할 뜻을 전하게 했다. 아울러 성 안 백성들로부터 거둔 막대한 양의 재물을 연나라군 장수에게 바쳤다.
“뭐야, 이제야 항복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전단 장군께서는 일단 그렇게 전하라 하시며, 준비가 되는 대로 성 아래에서 항복 의식을 갖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항복하더라도 자기 가족은 포로로 데려가지 말고 ‘성 안에서 편안히 살도록[安堵(안도)]’ 선처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야 어려울 것 없지.”
그렇잖아도 오랜 싸움에 진력이 날 대로 나 있던 연나라군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그러니 자연히 방심하여 허점을 보이게 되었다. 이때 전단은 1천 마리의 소를 동원하는 기발한 전술을 구상했다. 붉은 천에다 용을 그려 입히고, 뿔에는 날카로운 칼날을 붙여 매고, 꼬리에는 기름 적신 짚단을 매달았다. 그런 다음 밤이 되자 짚단에다 불을 당겨 성문을 활짝 열고 일제히 풀어놓았으며, 중무장한 5천 명 정병으로 하여금 그 뒤를 따르게 했다.
그 한번의 공격으로 제나라군은 연나라군에게 결정타를 안겨 주었고, 그로부터 승승장구하여 잃었던 70여 개 성을 모조리 되찾았다. 그런 다음 전단은 민왕의 아들을 서울인 임치(臨淄)로 모셔 양왕(襄王)으로 즉위시켰다.
“나라가 위기를 모면하고 과인이 이런 광영을 보게 된 것은 오로지 경의 수고로움에 힘입은 것이오.”
양왕은 이렇게 전단의 공을 치하하고 안평군(安平君)의 작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