矢 : 화살 시, 在 : 있을 재, 弦 : 활시위 현, 上 : 위 상, 不 : 아닐 불, 可 : 옳을 가, 不 : 아닐 불, 發 : 쏠 발
풀이
화살이 시윗줄에 얹어 있으면 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좋든 싫든 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처지를 일컫는 말이다.
유래
후한(後漢) 말기 천하가 영웅호걸들의 씨름장으로 변하여 혼란이 거듭될 무렵 하북의 원소(袁紹) 휘하에 진임(陳琳)이라는 부하가 있었는데, 힘차고 격정적인 문장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때 제후들 가운데 가장 세력이 뚜렷한 것이 조조와 원소였고, 이들은 운명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숙적이었다. 특히 원소는 조조가 황제를 등에 업고 승상이란 막강한 자리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더는 참고 볼 수 없었다.
“수염 없는 내시놈의 손자 주제에!”
이렇게 조조를 경멸하던 원소는 마침내 힘으로 그를 제거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대대적인 군사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역적 조조를 타도하자’는 대의명분을 천하에 알리는 격문을 사방으로 띄워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꾀했는데, 그 격문을 쓴 사람이 바로 진임이었다. 진임은 조조뿐 아니라 그 조상의 죄까지 들먹이는 격문을 휘갈겨 원소를 흡족하게 했고, 그 격문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그 힘찬 문장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이때 조조는 지병인 두통으로 드러누워 있었는데, 원소의 격문은 보란 듯이 그한테도 배달되었다.
‘흥! 얼빠진 놈이 무슨 수작을.’
조조는 코웃음치며 격문을 시종으로부터 받아 읽어 내려갔는데, 그의 얼굴이 점점 험악하게 일그러지다가 끝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원소, 이 죽일 놈! 네놈하고는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구나!”
일찍이 저렇게 화낸 적이 있었던가 하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로 그는 격분해서 펄쩍 뛰었는데, 그러다 보니 두통이 어느새 씻은 듯이 가시고 말았다. 이성을 되찾은 조조는 그제야 병이 나은 것을 알자, 참모한테 물었다.
“그런데 이 격문을 쓴 자가 누구라더냐?”
“원소 곁에 있는 진임이란 자라고 합니다.”
“그놈이 내 조상의 일까지 끌어다 대며 갖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문장 하나는 천하일품이로다.”
알고 보면 조조가 조금 전에 그토록 화를 낸 것은 원소가 자기를 치려고 하는 것보다도 진임이 신랄한 필치로 자기 가문의 약점을 사정없이 꼬집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탁월한 시인이요 문장가이기도 한 조조는 원한과 친근감이 엇갈리는 복잡한 심정으로 진임이란 이름을 가슴 속에 간직해 두었다.
이윽고 조조와 원소는 전력투구의 일대 결전에 돌입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조조는 마침내 원소를 멸하고 일약 천하제일의 패자로 우뚝 올라서게 되었다. 승자로서 당당히 기주(冀州)에 입성한 조조는 원소의 잔당들을 하나하나 치죄했다. 그러다가 진임이 자기 앞에 끌려 나오자 그만 지난날 일이 생각나서 버럭 호통을 쳤다.
“네 이놈! 격문을 쓴 게 바로 네놈이렷다?”
“그렇습니다.”
“그래, 주인을 섬기는 몸으로서 그 주인이 원하는 바에 따라 붓대를 놀렸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나 한 사람만 헐뜯으면 됐지, 무슨 연유로 죄 없는 조상님들까지 끌어다 욕을 뵈었느냐?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진 못하렷다?”
진임은 태연히 대답했다.
“승상께는 참 죄송합니다만, ‘화살이 시윗줄에 얹혀 있는 이상 날아가기밖에’ 무슨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 당시의 자기 처지로서는 목적을 위해 최상의 문장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 재치 있는 대답에 조조는 그만 껄껄 웃고, 진임을 용서하여 자기 사람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