城 : 성 성, 下 : 아래 하, 之 : 의 지, 盟 : 맹세할 맹
풀이
성 아래에서 맺는 맹약이란 뜻이니, 적에게 항복하고 체결하는 굴욕적인 강화를 말한다.
유래
춘추 시대 초(楚)나라 무왕(武王) 때 이야기다. 무왕은 호북성(湖北省)의 문(紋)나라를 쳐부수고자 군대를 파견했다. 그래서 초나라군은 문나라 국경을 돌파해 벌떼같이 쳐들어갔다.
“큰일났다!”
“초나라군의 침공이다!”
별다른 대비가 없었던 문나라는 비상사태에 어쩔 줄 몰랐고, 정면 대결은 엄두도 낼 수 없어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농성으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그런 싸움은 공격하는 쪽에서 보면 골치 아프기 그지없었다. 한바탕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면 좋으련만, 지구전으로 발전하게 되면 사기도 떨어지고 군량 보급에도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시일을 끌 수 없다. 총공격으로 성을 함락하라!”
초나라 대장은 추상같은 독전으로 공성 작전을 서둘렀지만, 성을 의지해서 싸우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효율성 차이는 실제 전력의 차이를 좁히고도 남음이 있었다. 초나라군은 몇 번이고 필사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문나라군의 결사적인 방어에 부딪쳐 끝내 성벽을 넘지 못하고 많은 사상자만 낼 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초나라군 대장은 공격을 일단 멈추고 남문 근처에 진지를 구축하여 병사들을 쉬게 하는 한편, 서울로 파발을 띄워 임금에게 전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물었다. 보고를 접한 초나라 조정에서는 곧 대책 회의가 열렸다.
“문나라 도성에 도달한 우리 병사들이 마지막 단계를 넘지 못하여 고난을 겪고 있는 모양이오. 무슨 신통한 방책이 없겠소?”
무왕이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묻자, 모두들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가운데 장군 굴하(屈瑕)가 앞으로 나와서 아뢰었다.
“문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곧이곧대로에다 단순해서 계략에 밝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임수를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속임수라……”
“소장이 파발 편에 마땅한 계책을 일러서 보내겠습니다.”
무왕은 기뻐하며 허락했다. 다음날, 성 근처 야산에 수십 명의 나무꾼이 나타나서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없애겠다는 듯이 베고 자르고 묶어 땔감을 만드느라 야단이었다. 그 광경을 성 위에서 내려다보던 문나라 장군은 성이 몹시 났다.
“아니, 싸움이 한창인 곳에 와서 나무를 하다니, 저런 미련한 놈들이 다 있나. 더군다나 저렇게 무분별하게 벌목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장군은 즉시 부하들더러 나무꾼들을 모조리 포박해 오라고 했고, 명에 따라 성 밖에 나간 문나라 병사들은 잠시 후 삼십여 명이나 되는 사나이들을 붙들어 왔다. 장군은 부하들에게 상을 내렸고, 나무꾼들은 옥에 가두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나무꾼들이 실상은 민간인으로 변장한 초나라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또 한 무리의 나무꾼이 나타나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그 나무꾼들을 단속하면 당연히 상을 받는 줄로 알고 있던 문나라 병사들은 이번에는 윗사람의 지시도 있기 전에 멋대로 성문을 열고 나갔다. 그것이 한쪽에는 위기이자 한쪽에는 기회였다. 미리 가까이 매복하고 있던 초나라군은 성문이 열리자마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문을 점령한 초나라군은 여세를 몰아 대궐로 달려갔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한 문나라 임금은 할 수 없이 ‘성 아래에서 굴욕적인 항복 강화’를 맺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