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 석 삼, 十 : 열 십, 六 : 여섯 육, 計 : 꾀 계, 走 : 달아날 주, 爲 : 할 위, 上 : 위 상, 計 : 꾀 계
풀이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란 뜻이다.
유래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제(齊)나라의 5대 황제인 명제는 송나라를 멸하고 제나라를 세운 고제(高帝) 소도성(蕭道成)의 5촌 조카로서, 고제의 적손(嫡孫)인 3대 울림왕(鬱林王)과 4대 해릉왕(海陵王)을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한 잔인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가 한 짓이 있으므로 제풀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고제의 적통 황족을 모조리 살해했을 뿐 아니라, 신하들도 자기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이런 꼴이 계속되다간 내가 내 명에 죽지 못하겠구나.’
대신들은 누구나 이런 불안감으로 기침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암암리에 어떤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국공신으로서 대사마(大司馬)를 역임하고 회계(會稽) 태수로 내려가 있던 왕경칙(王敬則) 같은 이가 바로 그런 사람인데, 임금의 마수가 언제 자기한테 뻗칠는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외직(外職)에 있음을 기화로 그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암암리에 강구하고 있었다.
그 반면 명제 역시 왕경칙에 대하여 경계하는 마음이 컸다. 더군다나 이때 명제는 병이 들어 앓아누워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한테 평동장군(平東將軍)이란 직함을 주어 회계군의 바로 옆인 오군(吳郡) 태수로 내려보냈다. 왕경칙을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이제 노골적으로 내 목을 노린다는 것이렷다.’
이렇게 판단한 왕경칙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휘하의 1만 병력을 이끌고 서울인 건강(健康)으로 향했다. 도중에 농민들이 속속 가세하여 십여 일 만에 십만 병력으로 늘어난 것만 보아도 민심이 어떠한지 여실히 드러났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온 반란군이 관군을 깨뜨리고 서울에서 가까운 흥성(興盛)을 점령하자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고, 부황을 대신해 국정을 총괄하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관군의 패전 소식에 놀라서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그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껄껄 웃으며 경멸했다.
“하긴 단장군(檀將軍)도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제일 나은 것이 줄행랑’이라 했다지. 아닌게 아니라 이제 너희 아비자식 놈이 취할 길이라곤 도망가는 것밖에 또 뭐가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