奔 : 분주할 분, 命 : 목숨 명, 而 : 너 이, 罷 : 고달플 피
풀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몹시 피곤하다는 뜻이다.
유래
춘추 시대 초(楚)나라에서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이 유난히 심해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왕(莊王)이 다스리던 기원전 595년, 왕명을 받들어 송(宋)나라를 공략하고 돌아온 실력자 자중(子重)은 그 상으로 신(申)과 여(呂) 두 지방을 달라고 청했다. 나쁘게 보자면 건방지고 무리한 요구였지만, 장왕은 그의 공을 참작해서 승낙하려고 했다. 그러자 무신(巫臣)이 나서서 극구 반대했다.
“아무리 공이 있다고 하나 신과 여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그 두 곳은 국방의 요지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렇군.”
장왕은 무신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자중에게 두 지방을 하사하려던 계획을 철회해버렸다.
‘이런 죽일 놈이!’
자중은 무신의 반대로 일이 틀어지자 불같이 노하여 그에게 큰 원한을 품었다. 그런 자중에게 배짱이 맞는 동지가 생겼다. 자반(子反)이라고 하는 귀족이었다. 지난날 적국 출신인 아름다운 여인 하희(夏姬)를 첩으로 삼으려고 욕심을 냈다가 무신이 반대하는 바람에 망신만 당하고 실패한 그는 자중이 내미는 손을 두말 없이 잡았다. 그리고는 같이 힘을 합쳐 무신을 무너뜨리기로 약속하고 암암리에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국정의 실권을 장악한 두 사람은 무신에게 죄를 덮어 씌우고 그 가족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무신은 마침 이때 진(晉)나라에 외교 사절로 가 있었는데, 자기가 없는 사이에 국내에 변괴가 발생해 가족들이 참변을 당한 사실을 알고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자중과 자반 두 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초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너희 두 놈이 바쁘게 돌아다녀 피곤하도록 만들어 주리라.’
무신은 말로 그치지 않고 진나라 왕을 알현하여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적극 권했다. 당시 진나라와 초나라는 긴장된 대립 관계에 있었으므로, 진나라 왕은 무신의 권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끌어들인 것이 오(吳)나라였는데, 진나라 왕의 사자 자격으로 오나라에 찾아간 것은 무신이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강국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 지름길은 강력한 전차 부대를 보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나라에는 지금까지 전차 부대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국방을 자신할 수 있을 것이며, 전하의 체면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진나라 임금께서는 만약 전하께서 협조해 주기로 약속하신다면 전차 부대를 편성하도록 하여 그 훈련을 돕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시 오나라는 후진국 축에 드는 나라여서 선진국인 진나라의 원조 또는 문물 도입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투력 향상 역시 시급한 실정이었다. 진나라 쪽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 오나라 왕 수몽(壽夢)은 무신을 융숭히 대접하고,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 얼마 후 초나라 영토에 오나라군이 갑자기 쳐들어왔다. 보고를 접한 초나라 장왕은 자중과 자반에게 오나라군을 격퇴하라고 명령했으므로, 두 사람은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러자, 오나라군은 별로 싸움다운 싸움도 하지 못한 채 달아나고 말았다.
“원, 싱거운 놈들 같으니!”
자중과 자반은 코웃음치고 자신만만하게 회군했다. 그러나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쪽 국경에서 오나라군이 침공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이번에도 적은 싸우려고 하지 않고 국경 너머로 달아나 버렸다. 그러고 나서도 변방에 오나라군이 출몰하는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발생했고, 그럴 적마다 자중과 자반은 헐레벌떡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겨우 일 년 동안에 두 사람이 오나라군을 격퇴하기 위해 이곳저곳 국경 지대로 달려간 것이 일곱 번이나 되었으니 그들 자신뿐 아니라 전 병사들이 지쳐서 녹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초나라의 국력 소모는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대로 오나라는 전차 부대 보유로 군사력이 갑자기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