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 물을 문, 鼎 : 솥 정, 輕 : 가벼울 경, 重 : 무거울 중
풀이
솥의 무게를 묻는다는 뜻으로, 황제 자리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
유래
춘추 시대 초(楚)나라는 여러 제후국들 중에서 세력이 첫 손가락에 꼽혔다. 그 초나라의 장왕(莊王)은 용맹하고 적극적인 인물로서 모든 제후국뿐 아니라 상징적 종주국인 주(周)나라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어느 해 장왕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북쪽 오랑캐 융족(戎族)을 정벌하고는 일부러 우회하여 주나라 도성 밖에 이르러 열병식을 개최하며 세력을 과시했다.
주나라의 천자(天子) 정왕(定王)과 그 신하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만약 장왕이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손짓 한번으로 도성은 파괴되고 종주국의 사직은 무너질 것이 틀림없었다. 정왕은 놀란 중에도 대신 왕손만(王孫滿)을 보내어 장왕을 위로했다.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장왕이 말머리를 돌렸다.
“과인이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지금 이곳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구정(九鼎)이 안치되어 있는 줄 알고 있소이다. 대체 그 크기나 무게가 어느 정도요?”
구정이란 본래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아홉 주(州)의 구리를 모아다 만들었다고 하는 아홉 개의 삼발이 솥으로서, 국가의 상징물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고 알려진 보물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왕만이 천하의 주인될 자격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장왕이 제위(帝位)를 노리고 있음을 간파한 왕손만은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사실은 저도 확실히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것이 왕권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나라를 얻고 다스림이야 덕행의 결과이지 그런 물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려고 하지 마오. 솔직히 말해서 과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새로운 구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오.”
“아니, 전하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옛날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이 흥성할 때는 모든 주변국들이 조공을 갖다 바쳤고, 아홉 주의 제후들이 구리를 헌납하여 구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거죽에 괴상한 그림이 새겨져 있고, 세상 형편에 따라 두려운 조화를 부린다고 합니다. 선한 임금이 옳고 바른 정치를 하면 사직을 공고히 받쳐 주지만, 야욕을 부리고 덕행을 멀리하면 나라를 망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허허, 설마……”
장왕이 코웃음치자, 왕손만은 정색으로 말했다.
“구정의 조화에 대해서 그렇게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인의와 덕이 행해지면 구정은 작아지지만 무거워서 옮기기가 어렵고, 세상이 어지러워 간사한 무리가 들끓으면 구정은 거추장스러울 만큼 부피가 커지지만 무게는 반대로 아주 가벼워져서 별로 어렵잖게 옮길 수 있습니다. 하나라 걸(傑)임금이 혼미해져 구정을 은(殷)나라로 옮겨갈 때도 그랬고, 우리 주나라 성(成)임금께서 구정을 겹욕(郟鄏)에 안치하실 때도 그랬지요. 겹욕에 안치할 때 복점을 친 결과 대대로 30대에 걸쳐 700년 동안 나라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괘가 나왔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주왕실의 힘이 비록 약해지긴 했으나 아직도 하늘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즉 전하께서는 ‘구정이 큰지 작은지,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 명심하십시오.”
완곡하면서도 냉엄한 경고였다. 장왕은 심사가 매우 좋지 않았지만 화를 낼 수도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왕손만의 말이 논리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장왕은 군진을 거두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