芒 : 가시 망, 刺 : 찌를 자, 在 : 있을 재, 背 : 등 배
풀이
가시를 등에 짊어진다는 뜻으로, 등 뒤에 두렵거나 거북한 존재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의미다.
유래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곽광(藿光)이란 인물이 있었다. 무제는 사리가 분명하고 과단성이 있는 그를 대단히 신임하여 자기 사후의 조정 일을 미리 위임했다. 그래서 무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각광은 대사마 대장군이란 막강한 직위를 차지하고는 8살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소제(昭帝)의 후견인이 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황제의 폐립 문제까지 독단할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소제가 21살의 한창 나이로 죽자, 곽광은 중신 회의를 소집하고 무제의 손자인 유하(劉賀)를 새 임금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그는 등극하자마자 가무와 음락에 빠져 정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일생일대의 실수로다!’
곽광은 후회막급하여 즉시 폐위 절차에 들어갔다. 우선 대사농(大司農) 전연년(田延年)을 은밀히 불러 의논했다.
“생각건대 아무래도 옥좌의 주인을 갈아야 할 것 같소.”
“이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이지만, 황실의 어른이신 태후마마께서 과연 허락하실지 모르겠구려.”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일인데 설마 마다하시겠소? 무황제께서 이 사람한테 내리신 유조(遺詔)도 있고 하니 설득해 봅시다.”
태후 앞에 나아간 곽광은 유하의 잘못을 역설하여 태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 다음 즉각 퇴위 절차를 밟아 유하를 내쫓고 무제의 증손자 유순(劉詢)을 데려다 보위에 앉히기로 했다. 유순은 무제의 태자 유거(劉據)의 손자인데, 냉혹하기로 이름난 무제는 말년에 무고 사건에 걸린 유거를 친아들인데도 용서하지 않고 일가족까지 다 죽여 버렸다. 다만, 이때 유순은 갓난아이였기 때문에 요행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유순으로 대통을 잇게 한다는 방침은 섰으나, 그의 현재 신분이 걸림돌이 되어 일단 양무후(陽武侯)로 봉했다가 나중에야 황제로 옹립했다. 그가 곧 선제(宣帝)다. 보위에 오른 선제는 고조의 묘에 참배하기 위해 대궐을 나섰는데, 이때 곽광이 대장군으로서 호위역을 맡았다.
그런데 곽광이야말로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막강한 존재이므로, 선제는 그와 동행하는 것이 마치 ‘등에 가시를 짊어진’ 것 같이 거북하고 조마조마하여, 그 전전긍긍하는 태도가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곽광이 살아 있는 동안 선제는 황제 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가 기원전 68년 곽광이 병들어 죽자, 비로소 친정(親政)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