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 : 일만 만, 全 : 온전할 전, 之 : 의 지, 策 : 책략 책
풀이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으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전한 방법을 말한다.
유래
후한(後漢) 말기, 천하의 패권을 걸고 조조와 원소가 관도(官渡)에서 맞붙었다. 유비나 손권 등은 아직 두각을 크게 드러내기도 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싸움의 승리가 조조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져 주었지만, 초기에는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기세나 능률면에서는 조조가 앞선 느낌이었고, 병력 운용이나 보급 등에서는 원소 쪽이 한결 여유가 있었다.
전국의 각 제후와 군벌들은 관심 있게 이 관도 싸움을 바라보았다. 싸움의 결과에 따라 자기네의 처신이나 입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조와 원소를 빼고 나면 가장 막강한 제후가 바로 형주(荊州) 자사 유표(劉表)였는데, 당연히 조조와 원소는 유표를 자기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달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했다. 따라서, 유표는 유리한 입장에 서서 지지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관망만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한숭(韓嵩)이, 우리가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양쪽의 원한만 사게 될 것이라고 간곡히 진언했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 가담하는 것이 낫겠는가?”
“여러 가지 점으로 봐서 조조를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조조는 주군의 은의에 감동하여 큰 상을 내려 줄 것이니, 자자손손 전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만전지책’입니다.”
그러나, 유표는 결단력이 부족한 데다 객장(客將)으로 와 있는 유비 등 조조 적대파의 반대에 부딪쳐 한숭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관도 싸움에서 조조는 천신만고 끝에 원소를 멸망시켰고, 이어서 형주는 조조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