累 : 포갤 누, 卵 : 알 란, 之 : 의 지, 危 : 위태할 위
풀이
여러 개의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위태한 형편이라는 뜻이다.
유래
옛날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세 치 혀 하나를 밑천삼아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능변으로 호감을 사서 출세하려는 이른바 세객(說客)들이 흔해 빠졌다. 그중에는 세상을 경영할 만한 지혜의 소유자도 물론 있었지만, 대개는 톡톡 튀는 말재간뿐인 자들로 이를테면 사회의 필요악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위(衛)나라의 범수(范脽) 또한 그런 세객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가난하고 미천한 집 출신이라서 좀체 이름을 날릴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위나라 대신 수고(須賈)가 중대 사명을 띤 외교 사절로 제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마침내 범수가 그 수행원에 발탁되었다. 범수로서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모처럼 얻었다고 기뻐했다. 제나라로 간 수고는 양왕(襄王)을 만나 외교를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 대신 범수가 현란한 말솜씨로 탁월한 언변을 쏟아 놓아 제나라 왕과 대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일에 기분이 상한 수고는 귀국하자마자 왕에게 말했다.
“범수란 놈은 알고 보니 제나라와 내통한 첩자였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모처럼 잡은 기회에 능력을 발휘하고자 적극적인 웅변을 펼쳤던 것이 도리어 첩자 누명의 빌미가 되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범수에게 갖은 고문을 가하여 초죽음으로 만들고는 거적에 둘둘 말아 변소에 버렸다. 그리고는 취객들로 하여금 그 몸에다 오줌 세례를 퍼붓게 했다.
‘아하, 세상에 어찌 이런 경우가 있으랴!’
범수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한탄했으나, 한편으로 동물적인 생존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어디 두고 보자. 이 정도로 죽어 나간다면 내가 어찌 제대로 된 세객이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범수는 간수를 불러 자기 목숨을 구해 주면 반드시 뒤에 후한 사례를 하겠다고 설득했다. 뛰어난 말솜씨에 홀딱 넘어간 간수는 거적 속의 죄인이 죽었으니 갖다 버려야 되겠다고 왕에게 말해 허락을 받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범수는 정안평(鄭安平)이란 사람한테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이름도 장록(張祿)이란 가명을 썼다. 그 후 진(秦)나라에서 왕계(王稽)란 사신이 위나라에 찾아왔는데, 정안평은 객사에 있는 왕계를 은밀히 찾아가 범수를 추천했다.
“우리 마을에 장록 선생이란 분이 계신데, 천하를 움직일 만한 재주가 있습니다. 다만, 몸을 드러내 놓고 활동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대인께서 은밀히 진나라로 데려가시면 큰일을 해 낼 것으로 믿습니다. 한번 만나 보심이 어떠할는지요.”
다음날 밤 왕계는 범수의 청산유수 같은 달변과 식견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귀국할 때 범수를 하인으로 변장시켜 숨겨 데리고 갔다. 왕계는 어전에 나아가 말했다.
“전하, 신이 이번에 위나라에서 탁월한 세객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장록이라고 하는데, 그는 우리 진나라의 형편이 마치 ‘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고 하면서, 자기를 발탁하면 이 나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진나라 왕은 소양왕(昭襄王)이었다. 그는 한낱 세객 주제에 자기 나라 사정이 어떻다는 둥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기왕 데려온 사람이고 세상의 눈이 있으므로 일단 낮은 직책을 주어 능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호된 고난을 겪은 범수가 그 필생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재능을 다하여 왕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고, 나중에는 ‘먼 나라와 화친하면서 가까운 나라부터 먹어 들어간다[遠交近攻策(원교근공책)]’는 외교 정책으로 진나라의 국운을 융성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