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 : 서울이름 낙, 陽 : 양기 양, 紙 : 종이 지, 貴 : 귀할 귀
풀이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는 뜻으로, 저서가 많이 팔렸을 경우 일쑤 인용되는 말이다.
유래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던 좌사(左思)는 제나라 서울 임치(臨淄) 출신으로서, 가난뱅이인데다 교제도 낮고 생김새도 추했지만 문장 하나는 탁월했다. 그는 일 년간 고심하여 『제도부(齊都賦)』를 썼는데, 이것은 자기 출신지인 제나라 서울의 사물에 관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흡족한 그는 계속해서 『삼도부(三都賦)』를 쓰기로 작정했다. ‘삼도’란 삼국 시대의 위(魏)나라 서울 업(鄴), 촉(蜀)나라 서울 성도(成都), 그리고 오나라 서울 건업(建業)을 뜻했다.
그가 작품 구상에 한창일 때, 누이가 갑자기 궁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되었다. 그도 함께 서울인 낙양으로 이사했고, 뛰어난 문사가 기라성처럼 많은 중앙 무대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지만 집필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야!’
이렇게 절감한 좌사는 스스로 비서랑(秘書郞)이 되어 궁중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문헌을 읽어 학문적 시야를 넓혔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십 년 만에 『삼도부』를 완성했건만, 처음에는 작품의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공(司空) 장화(張華)가 좌사의 집에 찾아왔다. 장화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말했다.
“참, 듣자니까 오래 공을 들인 작품을 최근에 완성했다지요?”
“그렇습니다.”
“어디 내가 한번 봐도 괜찮겠소?”
“글쎄요, 변변찮은 작품이어서……”
좌사는 선뜻 내키지 않는 데도 『삼도부』를 장화한테 보여 주었다. 중앙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기도 한 장화는 『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아니, 이런 훌륭한 작품을 가지고 무슨 당찮은 겸양이오. 내가 보기엔 반고(班固)나 장형(張衡)을 능가하고 있소이다.”
반고와 장형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서, 반고는 『양도부(兩都賦)』, 장형은 『이경부(二京賦)』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대시인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뛰어넘었다는 장화의 극찬은 금방 화제가 되었고, 글을 읽는다는 사람들은 지식인 반열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앞다투어 『삼도부』를 베껴다 읽었다. 그 바람에 ‘낙양 안의 종이가 갑자기 동이 나서 종이값이 폭등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